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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작가의 랜덤 작업실 - 글맛

피식피식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쭉쭉 읽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천재작가의 랜덤 작업실》의 주인공 김진우는 보조작가로 일하다가 노동 착취와 자기 자식과 같은 작품들을 뺏어가는 메인작가를 향해 버럭 소리치며 작업실을 뛰쳐나갑니다. 그 직후에 시스템교(?)를 만나 천재작가로 진화합니다. 진화한 김진우는 시스템교에서 지정한 장소에서만 천재적 글솜씨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장소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실장님 집이기도 하고, 율돌목, 아마존, 북극점 심지어 지구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김진우는 시스템교에서 은밀히 도와주기 때문에 그 모든 장소에 성공적으로 안착해서 글을 쓰고 발표하는 글마다 흥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런 에피소드들 중간중간에 글맛 작가의 개성넘치는 유행어(?), 신조어(?) 등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신조어 등을 한글 파괴라고 생각하며 혐오하시는 분은 이 작품을 피하는게 좋겠습니다. 짧은 호흡으로 툭툭 던지는 대사가 주를 이루는 《천재작가의 랜덤 작업실》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지만 그 때문에 큰 카타르시스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볍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을 찾는다면 추천합니다.
최근 글

연애시대 - 노자와 히사시

"잃은 것의 크기와 어떻게 타협해야 할지 몰랐"던 리이치로와 하루는 사산이라는 크나 큰 사고에서 서로의 절망과 멍울을 보지 못하고 각자 마음을 감추는데 급급하다 이혼합니다. 그들은 1년 3개월의 결혼 생활 후에 "각자의 인생올 다시 살아보자"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이혼 후에 더욱 상대를 배려하는 부부인듯, 연인인듯, 친구같은 사이가 되어버리죠.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마음때문에 이혼 후의 그들은 자학과 할큄의 연속입니다. 리이치로는 이혼 후에 만나는 여자를 무의식 중에 하루와 비교하곤 합니다. 여성의 대표성을 하루에게 부여하고 리플리 증후군을 앓게 됩니다.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할 것 같아 스스로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믿고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남자를 소개해주죠.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이, 하루가 리이치로에게 재결합의 의사를 전하려고 하는 날에 다른 남자를 소개합니다. 이 때 하루는 리이치로와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완전히 닫게 됩니다. 하루는 리이치로가 새출발을 해야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리이치로와 다른 여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 “당신이 보이는 곳 하지만 당신은 날 볼 수 없는 곳에” 있기로 합니다. "골목에는 사람의 왕래가 끊기고, 자동판매기만이 어둠속에서 번쩍번쩍 빛을 뿜어냈다. 마치 뭐랄까. 밤바다에 내던져진 인간이 반짝이는 부표를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그런 고독감이 밀려들었다." 리이치로의 연애를 응원하는 하루의 고독감입니다. 전남편을 계속 사랑하기로 스스로 결정했지만 참담합니다. 하루는 응원이 결실을 맺어서인지 리이치로는 학창시절 첫사랑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 결혼식에서 하루는 축하의 말을 마음속으로 전합니다. "축하해, 내 사랑……." 《연애시대》는 96년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구태의연하지 않고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입니다. 막장 요소까지 현대적이죠. 등장하는 모든 여성인물...

옷소매 붉은 끝동 | 강미강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야기며 인물들까지 대부분 사료에 근거한 실화입니다."  판타지적 요소를 기대하고 이 책을 읽으신다면 실망하실 겁니다. 맹목적인 사랑, 이능력, 흘러넘치는 감정. 이런 것들과 거리가 있습니다.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소설입니다. 역사적 시간과 사건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사실적이고,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서 현대적입니다.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스스로에게 부여된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동조한다는 점에서요. 성덕임은 승은을 두 번이나 목숨을 걸고 거부한 여성입니다. 그래서 작가가 그려내는 성덕임과 실제 인물인 성덕임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임은 왜 궁녀가 당연하게 왕을 사랑해야 하는가? 자신의 마음은 자기 것이 아닌가?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때에는 불손했던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제군주제에서 덕임 같은 가치관이라면 평탄한 삶을 누리기 어려울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조의 짝사랑?! 덕분에 위기를 잘 넘어갑니다.  "후궁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누가 더 예쁨받았나를 따지는 사람은 많아도, 그 후궁들은 과연 왕을 사랑했을까 의문을 품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왕의 손짓 하나면 주저 없이 옷고름을 풀어야 하는 시절이 과연 계집은 반드시 왕을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를 정당케 할 수 있을까? 임금이 내린 향기로운 옥석 첩지는 후궁의 머리를 짓누르던 한날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1권의 1부까지는 꽤나 지루하게 느껴져서 중간중간 다른 책을 집었습니다. 하지만 2부부터는 시간을 아끼고, 날아가는 시간에 줄어드는 페이지를 아쉬워 했습니다. 덕임이 청년 임금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삶을 행복하게 살길 응원하는 반면 청년 임금이 자신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세상의 중심이 덕임이 되길 마음속으로 주문했습니다. 덕임은 고집스럽게 덧붙였다. "할 거야. 해야 돼.”  "왜?”  “지기 싫으니까.” ...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자신의 인생을 직접 설계하고 스스로가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이런 훌륭한 인생이라면 타인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택 할 수 없는 것들, 출생, 부모, 국가, 성별 등. 이런 것들 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생이 많이 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 보며 위안을 얻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가 선택 할 수 없는 것들조차 평등하게 누리지 못하니, 출발 선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평등한 것은 언젠가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라고 믿습니다. 자유의지로 설계한 인생의 목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살아 나가는 거죠. 조금씩 조금씩.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그들은 각자 자기의 나무를 오르고 있을 뿐이다. 나도 적당한 나무를 골라 오르면 된다. 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가 아니면 어떤가. 내게 맞고 오르는 것이 즐거운 나무라면 된 것 아니겠는가.”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언제나 고통과 고민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많은 고민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 고민들 중에 유달리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질 때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짓누르는 사고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타인의 생각을 조금 엿보고 위안을 얻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필요 요소인 경제적 능력.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지름길로 달리려다가 넘어지기도 하죠. 오직 경제적 성공만을 위해서 사는 삶.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애쓰는 삶.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화려하고 눈부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수단으로 만드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이외에도 이런저런 인생의 고민들에 대한 힌트를 갈구...

닥터 프랑켄슈타인 - 경우 <추천>

환자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의사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취미생활은 왕진입니다. 모건우는 시리아에서 의료봉사활동 중에 피격되어 두 손과 한 쪽 눈, 그리고 심장을 이식받게 됩니다. 모건우는 척박한 환경에서 이식 수술을 받습니다. 이식 수술을 한 의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입니다. 이 의사는 이식 후에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지 않을 수 있는 실증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이 의사는 시리아 내전 중에 포로로 잡혔다가 모건우를 탈출시키다 총살을 당하고, 후일 정부군이 다시 그 지역을 탈환했을 때 모건우는 그 지역에서 의료봉사를 합니다. 모건우가 왜 그때 연구 기록을 찾아보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모건우 자신의 이식수술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에피소드가 존재하는데 말이죠. 환자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건우에게 감화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팀 모건우'를 이루게 되고 이 팀은 다른 의사들을 경악시킬만한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누구나 한 번 '팀 모건우'를 목도하게 되면 배우길 주저하지 않고 고액 연봉의 스카우트를 진행할 정도입니다. 당연히 '팀 모건우'의 중심에는 모건우가 있습니다. 모건우가 이식받은 손과 심장, 눈은 각각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을 이용해 단숨에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춘 외과의가 됩니다. 만약 《닥터 김사부》 시즌 1을 보신 분이 《닥터 프랑켄슈타인》을 읽는다면 1~2권에서 엄청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느낌 때문에 초반 재미가 상당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어른의 어휘력 | 유선경 <서평>

제목 때문에 읽게 되는 책이 있습니다. 《어른의 어휘력》도 그런 책들 중에 한 권입니다. '어른의 어휘력'이라니.. 왠지 비밀에 싸인 무엇언가를 엿보는 것 같은 제목입니다. 아직도 어른이라는 단어가 저에게는 판타지적 요소가 있나 봅니다. 아직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차근차근 읽지 않고 곁에두고 목차에서 원하는 단락만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술 자리에서, 격한 토론의 현장에서 '말귀 못 알아 듣는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귀 못 알아 듣는 것에 대한 책임은 어느 쪽에 있는 걸까요? 서양 문화권에서는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동양 문화권에서는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합니다. 청자 중심으로 책임이 형성되어 있죠. 저는 이 문제에서 어느 한 쪽의 책임을 주장하기란 요원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어휘를 선택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같은 시대를 살아도 동질의 문화권에 살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저마다 경험이나 생각이 다양하고 이제 부사와 형용사는 정확한 뜻을 전달한다기보다 서로 느낌이 통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쓰는 듯 보인다." 사실, 주어나 목적어가 없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건 "보편적 공감대 위에 언어적 직관으로 소통"했기 때문이죠. 비슷한 지식이나 환경에 처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유되지 않은 맥락으로 수신자를 배려하지 않는 말은 제대로 닿을 수 없습니다. 또 "수신자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어감"도 생각해야 하죠. 명확한 의사소통이란 정말 남을 배려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언어가 정확하게 일치해야 될 겁니다. 그린데 우리의 경험이나 말들은 고유합니다. 삶의 모든 경험들은 우리 뇌의 미시적인 세부구...

완전한 행복 - 정유정 <추천>

"이 소설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물건이라면 치워버리고 안 보면 되겠지만 사람이라면 피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둘 중 하나가 튕겨 나갈 때까지 맞불 작전으로 나가야 하겠죠. 문제가 해결 될 때 까지요. 그런데 신유나는 달랐습니다. 사람도 자신의 행복을 방해한다면 과감히 치워?!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불행의 가능성을 가진 주적이 생기면 적이라서! 과감히 제거합니다. 그렇게 신유나는 《완전한 행복》을 추구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 범인을 찾는 재미는 없습니다. 초반부터 살인의 현장을 묘사 해주는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공감되지 않는 심리를 좇아가다 보면 독서를 계속하기에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공포 영화를 보다보면 무서워서 보기 싫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는 심리와 비슷하달까요. 속이 뒤틀리는 거북스러움에 읽기를 자주 멈췄지만 결국 끝까지 읽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