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에서는 일상생활과 밀접하고 시사점이 있는 물음들이 있다. 그런데 모든 질문들이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서 읽다 보면 고구마 한 개를 통째로 삼킨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는 "철학적 물음에 정답이란 없다. 어휘가 정확하고 논리에 흠잡을 데가 없다면 각자의 답안은 모두 '모범답안'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작가가 답을 제시하는 물음도 있고, 물음에 물음으로 끝나는 물음도 있다. 물음에 대한 답이 존재하지 않은 물음이 시원하진 않겠지만, 질문은 답을 추구하는 본질적인 형질이 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낯선 목소리, 그것도 나의 '상식'에 강하게 맞서는 주장을 만났을 때 두뇌는 비로소 나태함에서 깨어난다.
나는 중학교까지는 굉장히 넓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점점 익숙한 얼굴들만 만나게 되고, 나중에는 주위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게 되었다. 빈말로라도 '친구가 많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시간을 걸어오는 순간순간에 '결국 인생은 혼자 사는 건데, 굳이 친구가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먹고살기 위해서건,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건 인간에게는 따뜻함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물 주고 가꾸는 수고 없이 꽃을 사랑한다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긴 세월에 걸처 들인 정성이 깊은 애정과 보람을 낳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다. 스치는 인연, 필요할 때만 보는 사이의 애정의 깊이가 얕다. 봉오리가 시들면 곧바로 다른 꽃을 찾는 사람과 꽃이 스러졌어도 끝까지 화초를 소중하게 가꾸는 이의 마음이 같을리 없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시큰둥하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도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거울신경세포가 그렇게 느끼게끔 할 것이다.
사르트르가 남긴 "타인은 나의 지옥"이라 말처럼, 인간관계에서 예속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면 그 관계를 짓밟고 탈출하고 싶어질 것이다. 결국 관계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어야 유지될 텐데…. 만약 사회가 발전한다면 우리의 관계도, 나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보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행복 수준에서 보면, OECD 국가나 부탄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 우리는 한 세대 전 사람들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박탈감과 헛헛함, 고독감은 더 크게 느낀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 세상은 원래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배를 채울 소박한 먹거리, 베개가 되어줄 나뭇등걸, 햇볕과 비를 피할 그늘만 있어도 인류는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은 쓸데없는 욕심을 불러 일으켰다. 단순히 배불리 먹고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 것을 넘어, 남보다 좋은 것을 먹고 멋진 옷을 입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순간, 내면은 괴로움으로 가득 찬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바라는 것을 조절해야 한다고. 많은 것을 갖고 성과를 내면 행복해진다. 하지만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내려놓는 것 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에서 살면서 한 번쯤은 머릿속에 담은 질문을 찾을 수도 있다. 그 때 찾지 못했던 물음에 대한 답의 힌트를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에서 찾을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을 이해하는 단서를 찾을 지도 모른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도 존엄한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 보자.
그런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생각이 드는 지점들도 있다. 이런 고구마를 싫어하는 사람은 이 책을 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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