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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표사 - 신갈나무

장르소설을 읽는 주된 이유 중에 하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입니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전능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팍!팍! 능력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대부분 이 전능한 능력은 무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환생표사는 조금 다릅니다. ‘말빨’에 집중되어 있지요. 그렇다고 기연이 없거나 주인공이 무력이 약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연을 얻어 내공만큼은 절대고수에 육박하지만 깨달음과 초식 운용 능력이 사사합니다. 그래서 꾀와 말빨로 대부분의 사건들을 해결합니다. 


아래는 환생표사의 한 장면입니다. 



휙! 휙휙! 

나는 칼질을 뚝 그쳤다. 

생각대로 됐으면 혁방세는 지금쯤 온몸이 난자당한 채 피를 철철……. 흘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당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데 그는 내게서 딱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새끼줄 끝을 잡은 채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 아닙니다.” 

뭔가 쎄하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거 만만하게 생각했다가 손에 다 들어온 장법을 놓칠 수도 있겠다. 

“기합 좀 넣어도 됩니까?” 

“좋을 대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마음대로 하라니까.” 

“죽엇!” 

나는 다시 질풍처럼 식칼을 휘둘렀다. 왼쪽 손에 쥔 새끼줄을 힘껏 잡아당기는 한편 눈알을 쑤시고, 얼굴을 베고, 입을 찔렀다. 

휙! 휙휙휙! 

얼굴을 한차례 조진 다음에는 가슴과 배를 집중적으로 난도질했다. 

휙휙! 휙휙휙! 

다음에는 양손, 새끼줄을 쥔 손과 다른 손을 번갈아 가며 썰고, 쑤시고, 그어댔다. 

휙휙! 휙휙휙! 

혁방세는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뛰거나 엎드리지도 않았다. 

오직 나아가고, 물러나고, 좌우로 꺾어 도는 보법만으로 내가 휘두른 식칼을 전부 피했다. 



이야기의 전개는 진지한데 중간중간 뭔가 ‘마블스러운’것 같은 코드가 들어갑니다. 저는 이런 점들이 재미있더라구요.

만약 논리적 무결점을 원하시는 분들은 이 책을 피하는게 좋겠습니다.


이번엔 다른 장면입니다. 


“나 어디가 좋아요?” 

“좋다고 말한 적 없소만.” 

“별로인 사람과 만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말할때 눈을 깜빡깜빡하는 게 예쁘오.” 

“그게 왜요?” 

“꽃이 폈다 졌다 하는 것 같소.” 

“옛날에 쓰던 기술인가요?” 

“먹혔소?” 

“어림도 없어요.” 


이정룡과 남궁소소가 썸타는 장면은 작품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남궁소소와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나누지만 여난?!은 이정룡을 비켜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할렘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이정룡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독자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장치들만 있습니다.
만약 감정에 대한 충분한 논리적 이유가 필요하신 분들은 이 책을 피하는게 좋겠습니다. ㅎㅎ

저는 환생표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키득거리기도 했구요. 이런 감정의 변화를 이 작품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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