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술 한 잔 사주세요!”
“그래. 오늘 회포를 풀어보자.”
그렇게 좋은 시간 속에서 직장 선배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처음에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의 많은 글쓰기 책들은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를 길게 풀어쓰는 법을 가르쳐. 문법이나 구성이라는 글쓰기의 고전적 도덕률에 충실해서는 인기 없거든. 자기 목소리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야말로 요즘 글쓰기 책들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그 글이 팔려야, 책으로 내지 않더라도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널리 읽혀야 그 가치를 인정받아.
“그렇죠. 내 책을 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될까요?”
천기를 누설하자면, ‘무조건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아서 뭐든 써’야 돼.
내가 가장 애용하는 글쓰기 루틴은 매일 턱밑에 차오른 마감에 허덕이며 우는 거야. 편집자에게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언제 쓸지 매일 고민하는데, 그 메일을 생각하면 비록 눈물을 흘리더라도 원고를 시작할 수 있게 돼.
마감이 없는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들은 일단 뭐든 루틴을 만들면 좋겠지.
“추천할 만한 방법이 있나요?”
음.. 일단 장소를 만들어. 식탁이나 커피숍. 여기 앉으면 글 쓰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작업실을 만들고 시간을 정하는 거지.
그리고... 많이 읽으면 좋겠지. 꼭 많이 읽는다고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아예 안 읽는다면 애초에 멀쩡한 글을 쓸 확률이 낮잖아. 어휘력이 부족해지고, 가용한 문장의 형태가 단순해지지.
“어떤 사람들은 작업할 때 헤비메탈을 듣잖아요? 선배는 어때요?
나는 바흐의 음악을 듣는 편이야.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도 먹고살려고 이렇게 많은 곡을 썼다는 점을 상기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또, 글 쓰기 전에 손 씻는 사람이나 향초를 키는 사람도 있어.
“노력하긴 싫지만 잘 쓰고는 싶은데 좋은 방법 없나요?”
그래. 우리의 결점은 인내가 없다는 거지. 그런데 에너지가 부족한 것은 아니잖아?! 그래서 고쳐 쓰기를 계속하면 돼. 퇴고를 할 때는 ‘남의 시선으로 읽기’가 중요해.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알고 있는 소재에 대해서 쓰잖아, 행간에 생략한 내용도 자동으로 내적 재생해가며 읽는단 말이지. 그렇게 본인 글을 본인의 마음으로 읽으면 백번 읽어도 수정이 어려워. 심지어 맞춤법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 특정 오타만 반복해 쓰는 경우도 있어. 글에도 습관이 있어.
문자의 형태를 한 의사소통을 할 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습관이 교양이 되지 않게 하는 문명화 작업을 해 봐
“‘잘 읽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되는 거죠?”
용건이 명료한 글일수록 잘 읽혀. 중언부언하면서 필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불분명한 글의 경우에는 아무리 쉬운 단어만 있어도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지. 또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에서 전문 용어가 주석 없이 나열될 때도 읽기 까다롭다는 인상을 주고.
또 잘 읽히는 글을 쓸려고 모든 것을 ‘풀어’ 설명할 수는 없어. 필자가 어렵게 보이게 쓰는 글도 있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쓰느라 어려워진 글이 있어. 철학이 대표적인 경우고 ,역사 또한 그렇지. 철학자가 쓴 책을 이해할 수 없어서 해설서(심지어 비전공자의)만 읽고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논할 수는 없잖아!
“네... 선배! 2차 갈까요? 연애 얘기도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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