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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다이어트》 - 롤프 도벨리


세네카는 이미 2천 년도 더 전에 인간의 시간 낭비에 놀라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재산을 지킬 땐 인색하면서도 시간을 낭비할 때는 너그럽다. 마치 거저 주어진 것처럼 최대한 헤프게 쓴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가 실로 인색하게 써야 할 유일한 자산이다.

롤프 도벨리는 뉴스를 단절하면 우리는 더욱 행복하고 풍요롭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일같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고 그것이 교양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뉴스를 단절 하는 것은 비사교적인 태도로까지 여겨진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건너온 짧은 소식들’을 모른다고 문제 될 건 없다. 오히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의견과 성향이 더해진 메타 정보를 통해 세상을 한층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뉴스를 소비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인지, 세계시민으로서 올바른 생활방침인지 생각해보자.
뉴스를 단절시켜도 합리적인 선거와 투표를 할 수 있을까? 뉴스 없이 어떻게 정치적 담론이 가능할까? 이 생각은 개인의 의견이 뉴스의 정보를 토대로 형성된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의 정신적 아버지라 불리는 장 자크 루소, 데이비드 흄, 존 로크, 샤를 드 몽테스키외 같은 인물들은 뉴스의 홍수가 시작되기 전의 시대를 살았다. 당시에는 뉴스가 넘치지 않았음에도 내용이 깊고 풍부한 정치적 담론이 존재했다.
또 선거에서 누군가를 제대로 뽑고 싶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후보자가 지금까지 성취 한 것을 찾아보는 일이고, 그 다음은 후보자의 공약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인터넷 속에서 길을 잃지만 않는다면 포털 사이트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 일은 문제가 아니다.
뉴스가 없으면 누가 권력자들을 감시할까?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탐사 보도 사례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이 사건만큼 집요한 추적과 탐사가 이루어진 사례도 드물며, 이만큼 권력의 꼭대기 층까지 접근한 탐사 보도는 거의 없다. 탐사 보도에서 성역은 없다.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보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실현하는 기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뉴스 기자와 달리 탐사 전문 기자는 하나의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기까지 몇 주 혹은 몇 달이 소요되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는 오늘 날에 팽배한 복사하여 붙여 넣는 작업에서 끝나는 ‘뉴스 저널리즘’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발표됐다. 해당 기사는 1만 6천 자에 달하는 장문이었다. 일간지의 한 면을 사진 없이 글로만 가득 채울 정도의 분량이다. 단신 중심의 뉴스 저널리즘을 멀리하며 깊이와 분석을 겸비한 탐사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지면 제4의 권력은 제 기능을 제대로 해낼 것이다.
음식이 달라지면 몸이 달라지듯이, 소비자가 달라지면 시장도 변화한다. 소비자가 몸을 틀면 시장은 금세 방향을 선회할 것이다.

롤프 도벨리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긴 글을 단번에 읽기가 힘들어졌다. 지속적으로 날아드는 뉴스의 파편들이 현실을 둘러싸면서, 누군가가 나의 집중력을 작디작은 조각들로 잘라놓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뉴스와 작별을 고하기 시작했다.

그가 뉴스와 천천히 작별을 고하기 시작한 이유를 알아보자.
거의 모든 언론사가 ‘팩트, 팩트, 그리고 더 많은 팩트’라는 신조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뉴스를 통해 알고 싶은 건 사건이 벌어진 원인, 다시 말해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건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히는 기자는 놀라우리만큼 적다. 그들이 밝혀낸 건 상관관계에 불과하다.
한편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고 관련된 기사를 쓸 수 있는 소수의 기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의 독자가 원하는 건 장문이 아닌 한 입 거리의 짧은기사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내용의 긴 글 하나보다는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단 10개의 짧은 기사가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더 많은 광고가 붙는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사람인 토머스 제퍼슨은 일찍이 1800년에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이 신문만 읽는 사람보다 더 많은것을 안다.
이른바 팩트라 불리는 사실들은 우리의 생각을 가로막는다. 사실이 넘쳐나면 생각은 그 안에 갇힌다. 뉴스를 소비하면서 당신은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 같은 환상은 자기과신으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스탠퍼드대학교의 폴 슬로빅 교수가 진행한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다. 실험에서 그는 경마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경주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에게 각 경주의 우승마를 예측해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그 예측을 얼마만큼 자신하는지도 물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각 경주마에 관한 세부적이고 확실한 정보의 양은 예측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치 않았다. 즉 정보가 많다고 경마로 인한 수익이 크게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보의 양은 참가자들이 자신을 과도하게 믿도록 큰 영향을 끼쳤다.
팩트의 물결 속에선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 거라는 착각은 하루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막스프리슈는 40년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문은 그저 그 날 얄게 된 것들을 내보낼 뿐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모든 것이 명확하다. 심리학에선 이러한 경향을 사후 확신 편향이라 부른다. 즉 사건의 결과를 알고 난 뒤에, 처음부터 그 사건을 예상했다고 착각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뉴스 소비는 이 같은 논리적 오류를 강화한다. 뉴스는 하나의 이야기를 짧은 길이로 축약해 전달해야한다. 이 조건을 채우려면 조악한 단순화 과정이 유일한 답이다.
그런데 뉴스 보도의 길이가 짧을수록 위험은 더 커진다. 인간의 뇌는 가능한 한 단순하고 빠르게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 이야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실제와 상응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뉴스 기자들은 우리의 요구에 부합하는 ‘사이비’기사를 적극 제공한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이 1퍼센트 하락했다’고 보도하는 대신 ‘X 때문에 시장에 1퍼센트 하락했다’고 보도하는 식이다. 이 X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소득의 변화든, 한국은행의 금리든, 파업이든, 특정 정치인이든.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 세상에서 어떤 한 사건을 야기한 단 하나의 X는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의 축소화로 인해 뉴스는 스스로 거짓 논증이 불가피 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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