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부적 요소를 전부 배제한채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은 사회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타인의 생각과 말에 대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외부적 압력 때문에 내재된 생각의 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역사를 더듬어 우리 생각에 기원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저자가 “읽기 쉬운 글은 고된 글쓰기를 통해 완성된다.” 라는 헨지 조지의 말을 인용한 만큼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플라톤에서 로마로, 중국으로, 중세로, 조선으로, 근대로, 6·25 전쟁 까지. 그 시대 철학자의 사상이 인류의 방향성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시대적 배경과 철학자의 삶을 토대로 철학에 입문하게 한다.
다음은 《철학, 역사를 만나다》의 로마 챕터다.
고대 전쟁에서 패배자에 대한 승자의 약탈과 학살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점령지의 종교와 풍습을 그대로 인정했고, 로마에 복종하는 한 지도자들의 권위도 인정해 주었다.
로마인들은 왜 그토록 적에게 관대했을까?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인간이 만든 법은 사실 ‘가짜 법률’에 지나지 않는다. 대자연에는 이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진짜 법이 있다. 이른바 ‘자연법’이 그것이다. 누군가 사람을 이유없이 죽였다면,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은 흥분하며 살인자를 비난할 것이다. 자연법이란 이렇듯 누구의 마음속에나 이는 인간 본성에 근거한 법을 의미한다.
자엽법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법에 복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자연법을 파악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누구든 존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 중에는 노예 출신의 에픽테토스부터, 황제인 아우렐리우스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고루 섞여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법이 적용되는 국가, 평등함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무엇보다도 통치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제일 중시하는 군주 국가가 가장 좋은 나라다.”
왠지 익숙한 글귀 아닌가. 이 시대에도 자본의 권력에 휩쓸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가치다. “로마를 지탱한 근본 원인은 군사력도 부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무를 명예로 아는 지극히 스토아 철학적인 정신에 있었던 것이다.”
노년의 소포클레스는 성욕을 느끼지 못해서 아쉽냐는 질문에,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 같다네!”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신산한 삶 속에서도 항상 그 뒷면에 있는 긍정적인 면을 보게 해 준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상을 말한다. 중국의 유교와 조선의 유교, 다양한 동양 사상도 서술되어 있다. 거기에 사진자료도 풍부하다. 저자의 말처럼 “시대에 울림을 주는 철학교양서”는 아직 요원하지만 내 가슴과 머리에는 확실한 흔적을 남겼다.
저자는 철학교사로서 자괴감을 느꼈다. 자신의 수업이 ‘지혜를 가장한 수면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역사 이야기를 할 때는 집중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철학과 역사의 미팅’을 주선한 것이다. 우리는 주선자가 우리를 얼마나 배려했는지 보기만 하면 된다. 시대별 사상이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가졌는지 확인해보자. 그리고 그 사상이 내 가치관에 얼마나 뿌리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철학은 공허하고 고리타분한 생각이란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철학, 역사를 만나다》에서 철학은 시대와 사람을 만나 역동적이고 역사는 낭만적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저자가 철학은 ‘삶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지극히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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