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테마에 관한 필자의 개성적 편향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편향된 시선이 반가운 이유는 솔직하게 필자와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세분화된 심리학적 해석은 덤이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심리학적 분석과 필자의 솔직한 마음을 들어본다.
“지금의 남편과 앞으로 50년을 더 살라고 하면, 우리나라 중년 여자 대부분은 차라리 고독사 하고 말겠다고 할 거다. ‘검은 머리, 파뿌리’는 평균수명 50세였던 시절의 전설일 따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게 된 각 개인은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바로 고독이다.”
“한국과 같은 ‘고독 저항 사회’에서 고립된 삶은 ‘호환 마마’보다도 무섭다. 고독에 대처하는 어떠한 문법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금만 보장되면 다 해결되는 줄 안다.”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다. 권력 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무대 위의 삶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술 당시 필자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대학 교수직을 ‘때려 치우고’ 일본에 가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고독과 싸우며 소통을 위한 책을 썼다. 소통을 위해 필자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가감없이 말한다. 읽다 보면 피식거리며 공감한다.
변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을 마다하고 퇴직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다니 보통 주위에서 ‘철 좀 들어라’라고 얘기 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이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라고 말한다. 사회적 역할로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스스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삶의 주인’이나 ‘주체적 삶’이 꼭 ‘위험한 결정’과 ‘적극적인 자유’를 동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힘겹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삶, 노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확실치 않다고 해도 가족의 정을 위한 삶 또한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한국의 남성들에게 추천한다. 내가 ‘선택’해서 특정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선택을 위한 고독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이 선택했다면 어떤 형태이든 ‘주체적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상호작용에는 ‘여지’와 ‘빈틈’이 있어야 한다.” 저자의 상호작용을 위한 ‘여지’와 ‘빈틈’ 그리고 ‘배려’가 다소곳이 포진해 있다. 지금은 여수에서 폼나게 그림을 그리고 있을 저자와 교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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